차혜림
세 개의 안내판
내가 그 장소에 다다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광주 사직공원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양림미술관에서 G. MAP으로 향하던 나는 정착 외국인과 특정 종교의 흔적이 즐비한 제중로를 빠져나와 평소의 습관대로 지도 앱을 펼쳤다.
첫 번째 목적지는 대로변을 건너면 바로 마주할 수 있는 광주향교다. 성리학을 가르치는 학교라는 게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영향을 받은 예식장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옛 건축 양식을 따라 외벽을 세운 뒤 페인트로 덧칠한 건축물, 한문이 새겨진 검은 비석 사이로 특정 시기 공기관이 보편적으로 사용했을 법한 안내판이 여럿 있다. 각기 다른 시기, 그 시절의 표지판 제작 방식을 따라 그 시절의 문체로 설명이 쓰여있다. 자신이 설명하겠다는 비석의 옆을 맴돌며 그에 준하는 크기로 번쩍이는 안내판의 모습을 보면 할 말이 별로 없다. 아니 그 흉물스러움에 아연실색하기보다는 숙연함을 느낀다. 얼굴도 모르는 까마득한 전임자의 기록을 함부로 지울 수 없는 아랫사람의 사정. 그 곤혹스러움이 이어져 알루미늄 용접, 분채 도장, 시트 커팅, 리벳 마감이 원본 비석을 압도하는 살벌한 풍경을 만들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우측으로 스무 걸음 정도 걸었을 때 나는 ‘그것’을 마주했다.
누
워
있
는
비
석
셋
나는 잠시 고민 후 안내판 옆의 계단을 올랐다. 광주 시내의 이런저런 비석을 한 데 모아두었다는 비군이다. 1957년 공원 앞에 있다가, 1965년에 현재의 위치에 조성되었다. 온갖 비석과 두꺼운 나무, 축축하게 썩어가는 낙엽, 낮인데도 불구하고 습기로 인해 조금은 뿌연 시야. 엄밀히 말하면 이곳에 모인 비석은 죽은 이를 기리기보다는, 지역 유지가 고을 운영을 다스린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죽은 것들 사이에 나만 살아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광주 비군 입구에서 우측 모서리를 보면 친일파 셋의 업적을 기리던 비석이 있다. 여기서 제일 큰 세 개의 돌. 어디서 구해 왔을지 모를 정도로 거대한 비석이 줄지어 있다. 누운 채로.
*비석이 더 잘 보이는 사진이 있지만 미래의 방문자를 위해, 다른 사진을 공유한다.
음각으로 이름과 행적 따위가 새겨진 자리에는 항시 물이 고여 이끼가 자라난다. 아니 미술인 중 그 누구도 누워있다는 사실만 공유할 뿐 너무나도 다른 수평성을 획득한 이 모양새를 상상한 적 없을 테다. 아닌가? 광주광역시이기에 단죄를 향한 열망을 이만큼씩이나 소화했겠지. 이건 기백이다(?) 그렇지만, 이런 온갖 (비)언어적 상징의 습격은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나는 이 셋을 어떻게 봐야 하지? 이 세 개의 비석도, 비석이 각기 다른 지역에 세워졌다가 모인 경위도, 비석을 눕히며 진행했다는 행사도, 투피스 양복을 입고 단죄문을 읽는 정치인도 꼭 알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얄팍한 계단을 부들거리며 올라가, 어떤 부분은 시대착오적이기에 이제는 잘 모르겠는, 좋다고 하기 어려운 사물을 눈에 담았다. 이런 경험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현재를 성찰하도록 만든다. 이제는 오컬트 영화를 통해서만 우습게 재맥락화되는 줄 알았던, 케케묵은 민족 정서는 남아있다. 공공의 합의를 거쳐 누워있는 비석의 존재감은 충무로, 을지로의 도로명이 지닌 상징성보다 직관적으로 나를 침습한다. 게다가 내가 살 수도, 빌릴 수도 없는 평평한 땅에 깊숙이 박힌 채... 관리되지 않은 비군의 모양새는 과거를 적절히 망각해도, 이 장소와 나를 분리해 그냥 살아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만일, 이 장소가 애국심을 건드리는 거점이 되어 일 년에 한 번씩 단죄가 행해진다면 그 나름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공동체가 과거를 상기할 때 괜찮은 방식으로 기억을 되새기기는 참 어렵지만, 호국의 얽매임이 다시 등장하기는 너무 쉽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피식민 경험의 이런저런 재현을 영화에서라도 접했다는 사실이 감사한 지경에 이른다.
그렇게 나는 찜찜한 기분을 안고, 공원을 내려왔다. G. MAP에 있던 작품이 딱히 나빴던 건 아닌데, 포장되지 않은 비군의 땅을 밟고 선 경험이 모든 걸 압도해 버렸다. 누워 있는 비석 셋이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진땀을 빼게 했다. 계단을 오르기 전부터 기록 사진을 찍기도 고민했다. 정확히는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을 다시 들춰보는 데도 답사일로 부터 한 달이 걸렸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하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미술 전시든, 공포 영화든 모든 감상을 웃도는 꺼림직한 경험, 시간차를 두고 연결되는 파편이 결국 나를 다시 걷게 만든다.
(덧붙임) 우연히도 내가 이 글에 언급한 모든 안내문과 비석은 2014년에 세워졌다. 2014년은 광주광역시가 양림동을 역사 마을로 삼아 지역의 근대 문화유산을 재정비하고 사직공원 전망대를 완공한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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