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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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던 낡은 서랍장이 있었습니다.
아마 저희 가족이 생기기 전이나 그 즈음 부터 있던 것이었겠죠. ‘서랍장’ 이라고 하면 그냥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무던한 생김새의, 짧은 나무 다리 네 개가 달린 서랍장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서랍장이 너무 흔들려 밑을 보니 다리 하나가 완전히 썩어서 빠져버리려고 하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저는 가구를 뒤집어서 살펴보았죠. 저는 이 오래된 서랍장을 버리고 새로 사자고 하였으나
워낙에 구두쇠였던 아버지는 이런 가구도 다 고쳐 쓸 수 있어야 부자가 되는 거라며 그 다 낡아빠진 서랍장을
고치려고 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다리가 될 만한 길이가 적당한 나무나 물건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죠. 뭔가 뾰족한 수가 있나 하여 보니, 아버지께서는 썩어버린 다리를 빼 버리고 그
옆에 있던 짝꿍다리를 서랍장의 가운데에 놓고는 다시 못을 박으려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니 아버지, 이렇게 다리가 세 개면 더 흔들리죠.” 라고 투덜거렸습니다만, 아버지께서는
그저 묵묵히 그 다리를 다시 붙이셨습니다. 그러자 제 예상과는 다르게 서랍장이 전혀 흔들리지 않더군요.
오히려 다리가 네 개일 때 서로 맞지 않아 흔들리던 것이 세 개가 되니 안 흔들리는 것이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빼 버린 썩은 나무다리와 공구들을 그 자리에 두시곤 저 보고 뒷정리를 하라며
유유히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참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왠지… 왠지 그 홀로 남아 뒤에서 서랍장을 무겁게 떠받들고 있는 세번째 다리가 너무… 무거워 보였다고
해야 되나… 어쨌든 말이죠, 그래서 한참동안 그 서랍장 밑을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앓던
이를 뽑아서 멀리 집어 던진 것 마냥 그 바닥에 툭 던져져 있는 썩은 다리 있지 않습니까? 그걸 버리려
하다가… 저도 모르게 소중히 간직해서 제 이 상자에 넣어둔 겁니다. 글쎄요 그건 뭐랄까요… 후련해 보였어요.
그래서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답답할 때 마다 볼 수 있게요. 오랜만에 이 상자를 열어보니 마침 이게
보이니까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어요.
아마 그 세번째 다리는 아직도 거기에서 서랍장을 들고 있겠지요? 이제 그 세번째 다리까지 썩어버린다면
그 서랍장은 정말로 버려야 할테니까요. 어쩌면 그 녀석은 그 때, 이 썩은 다리가 엄청나게 부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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