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혜림
여러분은 작업 노트와 스테이트먼트를 잘 구분하나요? 핸드폰 메모장, 드로잉 북, 커피 마시고 난 후 받은 영수증... 어디에 자기 생각을 적나요? 제가 창작자를 위한 글쓰기 수업을 들은 건, 자가-전시를 데굴데굴 굴린 지 7년이 지나서였어요. 기안문 형식의 기계적 글쓰기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에서 수업을 들었지요. 그래서 나와 내 작업을 들여다보는 솔직한 글쓰기를 뒤늦게 배웠어요. 그 이전에는 한 번, 친구가 작가 글쓰기 수업 필기를 공유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작업 노트와 스테이트먼트를 구분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들려준 내용에 의하면, 스테이트먼트는 작품의 배경에 해당하는 나의 작업관과 (성장 배경?) 태도를 기술하는, 가장 넓은 범주의 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반면, 작업 노트는 창작자가 일정한 시기의 작업군을 묶어서 기술할 때의 소회 내지는 설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실제로 그 당시의 기록, 일기와 생각을 이리저리 편집해서 만들어지지요. 하지만 여전히, 용어의 명확한 구분이 어려워요.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는 '작가 노트'라고도 지칭하므로, 표기의 혼동이 생길 수 있거든요.
혹시 업데이트하지 않은 나의 홈페이지에 예전 작업 노트가 링크되어 있어 당황한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형식적인 100자 내외 소개라면 모를까, 작업 노트는 홈페이지에 올라왔다가 곧 내려가는 천덕꾸러기 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PDF 파일로 업로드 하여, 글을 열기까지 여러 장애물을 만들어두거나 하지요. 요즘에는 홈페이지보다, 인스타그램 작업 계정이 많지요. 거기서 SNS 포스트의 형식을 한참 초과하는 길이의 작업 노트를 발견하기도 해요. 인스타그램에서의 작업 설명은 아예 없거나, 속절없이 길다는 게 저의 감상평입니다. 어쨌든 의도치 않게 발견한 나의 옛 작업노트는 어느 매체에서 발견하든 부끄러워요. 하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 이보다 재밌는 글이 있을까 싶습니다.
한 사람의 홈페이지가 궁금해 어쩌다 발견한 작업 노트에는 당시의 작업군을 구상하며 든 솔직한 생각을 엿볼 수 있어요. 창작하는 사람이 쓴 문장은 직관적인데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의 작가 노트를 읽을 때면 마음에 폭풍이 치는 느낌을 받아요. 음악을 들을 때처럼 울렁울렁 움직이는 거죠. 아무래도 작품이란 오감 중 몇몇을 편집하고 증폭하는 일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한 사람의 작업을 떠올리며 직접 쓴 문장을 읽다보면, ‘아니 이렇게 사물과 글이 신박하게, 혹은 찰떡같이 연결된단 말이야?’ 놀라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여기서 ‘신박’한 사례는 작가가 제법 고심해 온 의외의 지점에 놀라는 셈이고요. ‘찰떡’같은 사례는 글과 작업이 혼연일체여서 놀라는 식이죠. 요즘에 재미를 들이고 있는 전시장 비치용 글은 작가가 어떻게든 써낸 글인데요. 이 땅에는 설거지와 빨래를 해치우고, 작업실에 도달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내일을 그렇게 다시 살아야지. 다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셈 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보다 이런 사물(작품)과 글과 오롯이 만나는 즐거움에 집착한 탓에, 꽤 오랜 시간 화요일 오픈 직후에만 전시장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반면, 재미 없는 글도 드문드문 발견해요. 당연히 유명한 사람의 두루뭉술한 인용구가 붙어서, 눈 앞에 있는 작업의 어떤 부분도 설명해주지 못하는 글이죠. 그래도 요즘엔 많이 없어지지 않았나요? 저는 어떤 순간 부터는 그런 거대한 권위에 올라 탄 문장의 허례허식도 그러려니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날, 내적 요인보다 외부 참조의 비중이 높은 작품 설명을 쓰곤 했거든요. 그런 '좋지 않은 작업 설명'에 해당할 법한 글도 제법 써왔기에, 뜨끔 합니다. 나에게서 오지도 않고, 미술도 아닌 것을 작업 글쓰기로 다룬다면 그건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을까요? 저는 문제 의식이 흥미롭다면 개의치 않는 편인데도요. 나와 다른 이의 글을 반면교사 삼아, 어떤 순간에는 인용은 줄이고 삶의 경험 위주로 서술하는 식으로 수렴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 경험이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상관 없고, 관찰자여도, 외부인이어도 상관 없어요. 다각도에서 고민한 관점이라면 뭐든지 그 진심이 느껴집니다. 그 과정에서 못나고 장황한 작업 노트도 몇 번 나와야만, 다음이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플랫폼에 남아 있듯이, 저는 2023년에서 2024년이라는 특정 기간에 여러 형식의 글을 썼어요. 이메일로 안부 편지 또한 많이 썼습니다. 당시에는 작품 제작에 집중하고자 글쓰기를 줄였다 생각했는데요. 지나고 보니 가장 남은 글이 많더라고요. 2019년부터의 리서치 하나도 끝나고, 사람에 지쳐 전시할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미술 생태계와 글쓰기로 위성처럼 연결되고 싶었나봅니다. 글쓰기가 작품 제작할 에너지의 총량을 뺏는데도요!
이 플랫폼을 만들고 나서 나에게 글쓰기가 무엇일까 자주 고민하는데요. 어떤 한계를 직면하고, 내려놓을 수 있을지 기대중입니다. 그럼 또 소식 전할 수 있길 바라요.
2026년 3월,
차혜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