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혜림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재료
저는 덕수궁 미술관에서 진행한 문신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조각으로서 석고가 가진 존재감을 생각했어요. 아주 단단하고 반짝이는 흑단 조각 사이에 모서리가 거뭇해진 채 서있는 석고 마케트는 학부 실기실에 굴러다니던 습작과 비슷했어요. 석고는 모서리가 쉽게 깨지고 내구성이 좋지 못해서 전통 조각에서는 더 견고한 재료로 향하는 전단계같은 역할을 했는데요. 문신 작가도 작업의 출발과 형상을 다듬어나가기 전의 상태는 비슷하구나. 그리고 재료가 가져오는 밀도로 인한 마감 차이가 이렇게 크구나. 직관적으로 느꼈어요. 아래는 제가 찍은 문신 작가님의 석고 원형과 심봉 사진입니다.
(좌) 《문신(文信) : 우주를 향하여》에서 석고 마케트, 소조용 도구를 전시한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22
(우)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방문중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1층의 석고 원형 섹션, 2024
재료의 경계가 많이 무너진 오늘날에는 석고로 복제용 틀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조각이 되기도 해요. 석고는 완전히 경화되기 전까지 쌓고 깎기 편리해요. 금속과 달리 안료를 섞어 경화하거나 겉에 물감을 채색하기 용이하고요. 저는 비교적 최근까지 석고를 단단히 굳히면서 안료를 높은 함량으로 배합하기는 정말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권용주 작가님의 최근 작업을1) 보고 그 선입견을 해소했습니다.
석고는 경제적인 가격으로 모델링 페이스트보다 두터운 질감을 내기 때문에 평면 콜라주에도 자주 등장하는 재료예요. 이 경우 형상보다는 마띠에르에 집중하기 때문에 이것이 조각이 될 지, 추상 회화의 표면에 가까울 지 그 속성을 선택하는 건 작가의 몫이죠. 저는 이러한 석고의 속성에서 회화와 함께 10, 20대를 보낸 기억, 그리고 제가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시대착오적 매체의 굴레에 대해 생각해요. 저는 제 머릿속이 회화하는 사람에 가깝다는, 평면적이라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석고가 저와 너무 닮은 재료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고강도 석고가 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모서리가 잘 마모되고 바스라지는 부분까지요. 그래선지 단독 재료로 사용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네요. 그렇기에 저에게 석고는 꼭 필요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재료입니다.
오늘 저는 석고 모델링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헨리 무어의 측면을 서술한 아니타 펠드먼의 자료도2) 소개하려고 해요. 헨리 무어는 1973년에 석고가 모형 복제 틀이 될뿐 아니라 원본 조각 그 자체라고 이야기해요. 석고 조각은 누군가의 손을 거쳐 완성된 실제 결과물이기 때문이에요. 이 인식 자체가 레디메이드나 아상블라주의 접근법과는 무관해 보여서 참 옛스럽네요. 무어는 양차 대전 이후에 모델을 브론즈로 뜨는 작업을 진행하지 않은 작업이 몇몇 있어요. 석고 원형만 존재하는 거죠. 그리고 석고의 연약함을 살리고 싶었던 탓인지, 모자상이나 와상, 그리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군인처럼 인간의 취약함을 부각하고 싶을 때 이 재료를 적극 사용했어요. 후기로 갈수록 석고상 자체를 암갈색이나 상아색으로 칠해서 뼈와 비슷한 인상을 줬어요. 헨리무어는 공공조각을 석고 조각처럼 만들기를 바라게 되어요. 그래서 뼈를 닮은 아치 조각을 만들었는데요. 박영우 건축가의 글에 의하면3), 건축물 규모의 야외 작품을 석고로 만들 수 없어서 1차 작품은 유리섬유로 진행하고 그 표면을 가능하면 석고에 가깝게 다듬으려고 했어요. 이 작품은 인기가 좋아서 영구 설치를 제안받게 되는데요. 2차 작품은 동일한 모양의 석재로 제작됩니다. 그리고 말미에는 브론즈 조각도 남아있어요. 왜 작가는 유리 섬유를 석고라고 속이고 싶을 정도로 그 재료를 좋아했을까요?
〈팔 없이 누워 있는 인물 두 조각〉은4) 헨리 무어가 석고 조각 제작에 아주 익숙해진 1975년 제작품입니다. 작가가 석고 조각의 어떤 부분을 좋아했는지 확연히 느껴져요. 이 작품의 표면을 보면, 빗금을 새기는 밀도를 달리해서 둥근 부분의 반들반들함을 살리고 있어요. 조각의 광택 때문인지 수채화처럼 맑은 느낌도 듭니다. 이 작품까지 보고나니 어쩌면 제 자리에 있는 아무거나 장식장에 꼬질꼬질한 오브제를 만들 때 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재료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여러분은 낚시줄, 우레탄 폼 스프레이, 아이소 핑크, 마블 스펀지를 이야기 했어요. 우리는 왜 엄청 좋아하는 재료보다는 싫어하는 재료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게 더 쉬운지도 궁금해집니다. 그러면 글을 마칩니다.
차혜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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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7일 발행한 메일을 다시 편집했습니다.
1) 권용주 개인전《포털》, 아마도 예술공간, 2022년 7월 29일 ~ 2022년 8월 25일
2) Anita Feldman, ‘Henry Moore: The Plasters’, in Henry Moore: Sculptural Process and Public Identity, Tate Research Publication, 2015, https://www.tate.org.uk/art/research-publications/henry-moore/anita-feldman-henry-moore-the-plasters-r1151309, accessed 19 December 2025.
3) 박영우, 〈헨리 무어의 아치〉. the arch1979-1980, henry moore, london, uk, 2022년 6월 4일16:15, 2026년 1월 7일에 다시 확인했으나 참고 문헌이 불분명하다. https://m.blog.naver.com/ywpark5293/222759251915
4)〈 Two Piece Reclining Figure: Armless〉, 1975, 37.5×70×40cm, Henry Moore Foundation collection, 헨리 무어의 대표적인 조각 연작 'Reclining Figure'의 국문 표기를 따라 '누워있는 인물'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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