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성
결혼에 대하여 4
소년은 소녀에게 말한다.
우리는 결코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이미 너무 짐 지는 것에 지친 두 마리의 노새가 만난 것이니까.
짐지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건 짐을 싣는 주인이 아닌
짐을 들어본 노새거든
그러니까 우리는 하늘을 마구간 천장 삼아 살아가는 두 마리의 노새와 다름없어
우린 자유로워
난 자유롭게 널 사랑해.
소녀는 소년에게 말한다.
난 자유롭게 널 증오해
이럴 거면 왜 결혼한 거지?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결혼생활이랑 너무나도 달라.
왜 너는 날 내버려두는 거야?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게 가족이야?
우리는 가족이잖아
그 정도 간섭도 못 해?
왜 내가 뭘 해도 간섭하지 않는 거야?
내가 다른 남자랑 놀아나도 날 말리지 않지?
아이가 없기 때문이야?
아이가 생긴다면 좀 더 가정에 충실할래?
이건 자유가 아닌 방종이야.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사는 다른 사람에 불과해
완벽한 타인이지. 가끔 집에 있는 널 보면 다른 사람이 집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깜짝깜짝 놀라곤 해.
난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결코 들지 않아
넌 나를 그냥 집안의 가구 정도로 취급하는 거지
이건 결혼이 아니야. 사람과 함께 산다고 할 수 없어.
넌 나 같은 사람을 만난 걸 행운으로 알아야 해.
나같이 너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너의 자아를 훼손하지 않고 너를 자유롭게 두는 사람을 네가 만날 수나 있었을까?
난 너의 부모라는 감옥 속에서 널 구해준 구원자야
그런데 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지?
한바탕 쏟아낸 소년은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젠가 그의 부모가 그에게 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가족은 유전처럼 대물림되어 어느샌가 결코 지울 수 없는 숙명적 공포로 소년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는 자유를 부르짖으며 어느샌가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자신의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소년은 자신은 결코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이 굴레는 자신의 부모도 겪었던 것이며 그 부모의 부모도 겪었던
인류 자체의 문제임을.
그리고 그 문제가 자신에게도 이미 뿌리내려있음을 실감하고 전율했다.
아아, 난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나
이 심리 기저에 깔린 가족이라는 족쇄는 어느새 소년 자신이 되어있었다.
소년은 또 하나의 세상 창조자로서 소녀에게 족쇄를 채우고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그것을 예쁘게 감싸서는 또 소녀를 기만한 것이다.
그것은 정의롭지도 않았고, 사랑도 아닌 무언가였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는 옛 영웅의 말에 따라 소년은 처단받았다.
소년의 머릿속에서 영웅은 말했다.
"사랑과 정의는 그것을 위반한 자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도리를 다하시라고요.
자신의 맡은 바에 충성하세요."
"하지만 그건 제가 원해서 받은 게 아닌걸요"
"세상에 원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어요"
소년은 그냥 그 유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소녀의 입술은 끊임없이 움직였지만
소년은 그 말을 결코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그래, 이건 우리에게 아이가 없기 때문이야.
완전한 가정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가 고통스러운 거야.
우리 아이를 갖자.
더 이상의 고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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