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시각성·조형성이 가지는 힘
사진 작업의 힘
Q: 인터뷰가 후반부로 가고 있네요. 작가 주도의 연구, 도시 기록을 병행하면서도 시각성이나 조형성에 의존하는 작업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사진이 가진 매력은 한 화각에 다양한 특징을 잘 압축해서 시적으로 잘 보여준다는 점이 있죠. 그리고 그 자료는 연구 분야에서도, 예술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고요. 저는 이런 가능성을 퍼즐링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가능성이 있는 것을 잘 편집해서 효과적인 시각 언어로 보여주는 방식이 굉장히 중요하죠. 저는 사실 책 몇 권을 읽는 것보다 사진 하나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게 아주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래서 시각 예술이 되게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연구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잘 보여주고요. 우리가, 세상이, 문화와 역사가 어떤지 잘 보여주는 매체인 것 같아요.
저는 학교에서 역사나 미술 배울 때 많이 생각하거든요. 지금 내가 좋아하는 미술하고 역사의 그런 디테일, 흥미로운 지점을 수업에 못 갖고 오고, 그냥 텍스트로 그렇게 멍청하게 배웠을까… 거기엔 사람들이 했던 다양한 행위, 실험, 혁명, 좌절, 이 많은 디테일과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그걸 다 평면화시켜서 납작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지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요. 사진은 사진의 기초적인 장점을 잘 살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여전히 유효한 방식이라 믿어요. 요즘은 만드는 사진도 있는데, 그림 그리거나 그래픽 만들기와 뭐가 다르겠어요. 사진이 가진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과거의 빛을 담고서 현재에, 그 시간대랑 비슷한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게끔 하는 데 있죠. 그 다양한 디테일과 정보가 삶하고 너무 닮아 있으니까, 거기서 오는 많은 것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건 사진 말고 어떤 매체도 따라 할 수 없어요. 그 부분을 버릴 수 없죠.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출력할 수 있고, 물질성이 있다는 점이 아주 큰 장점이에요. 영상과는 또 달라요. 영상이 가진 것 큰 장점도 있지만 사실 저는 사진의 장점은 이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눈으로 본 걸 공유할 수가 있어. 그렇지 않아요? 내가 보고 경험한, 내 시야로 본 것이 제 눈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내 눈으로 이제 본 것을 담아놓고서 사람들하고 같이 공유하고, 분석할 수 있죠. 사진이 과거의 어떤 풍경을 기본적으로 기록하는 기능이 있으니까요.
작품에 압축된 시간과 문화
Q: 다음 질문입니다. 작가님이 찍은 건축물에 거주하는 분이 건축 양식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지만, 거주하면서 실용적으로 부분부분 가공한 모습이 사진의 한 화면에 잡히는데요. 그런 작품에 무의식적으로 집적된 시간성을 어떻게 감지하시나요?
A: 거주자분은 말로 전해 들은 부분만 아시죠. 가서 보면 보이죠. 그래서 거주자분하고 얘기하면서 왜 집을 변형했는지 듣거나 내가 못 본 부분이 있는지 얘기해 보고, 원래는 어땠는지 확인해 보는 과정을 거치긴 하죠. 말씀하신 대로 시간의 층이나 시대별 문화적 차이들, 그다음에 건축적 요소처럼요.
제가 정확하게 얘기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부분이 공간 안에 워낙 잘 들어가 있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 장면 중심으로 많이 촬영하려고 하죠. 예를 들면, 옛날 건축 유형, 뼈대, 거기에 이제 생활 문화사적인 측면에도 보이고요. 그다음에 그것을 바꿔나간 흔적도 해석이 가능하고요. 수도권 쪽에는 장판, 자개장도 있고 각각의 층위가 있죠. 온풍기, 천창, 똑딱이 스위치, 장판, 비닐 많이 발라놓고 그러면 (이유를) 유추 가능하죠. 서랍, 박스 같은 것도 있고, 폼 보드 같은 것도 붙여놓고, 거기는 피가 묻어있고, 위치가 안 맞는 가구도 있고, 시계를 왜 저렇게 해놓은 걸까 보기도 하고요. 막. 하하하.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고 생활했는지, 각 시대와 문화가 이제 쌓여 있는데요. 또 집은 일제시대 집이니까요. 그렇게나 시각 정보가 풍부하고 행위와 문화가 잘 보이는 압축적인 장면과 공간을 찍는 거죠. 그러다가 빈집을 찍으면 재미가 없어요. 빈집도 재밌는 부분이 있긴 있어요. 간혹 지하에 있는 작업처럼1) 이제 무역(간판)이 있거나 거기서 식물이 자라거나 하는 것들은 재밌는데요. 이 신흥동은 다 거의 다 비어 있는 집들이 많으니까요. 물론 좀 남겨진 흔적도 있지만 그런 거랑 느낌이 달라요.
그래서 이미 과거가 되긴 했지만, 현재의 모습이고 현재의 우리가 사는 모습일 거예요. 그러니까 역사가 만든 삶의 형태이면서, 삶의 형태가 역사가 되죠. 그런데 집은 물리적으로 크잖아요. 집이라는 게 쉽게 그냥 뒤집었다가 엎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공간도 그렇고요. 사실 공간은 변하거나 잘 사라지기도 하지만, 현재를 담는 특성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죠. 다른 것에 비해서는 좀 덜 변하지 않나. 나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여기도 헐린 것도 있고 그렇긴 하지만요.
1) 〈적산(敵産)_인천(仁川) 90〉, ⟪실용과 기복⟫, 시청각Lab, 2024. 전시 리플렛 표기: B1-17, 지하 1층 벽면에 전시.
사진에 담긴 시선을 따라가며
A: 이 작업의2) 경우는 이 집이 또 없어졌어요. 사진은 아주 좋은 매체예요. 사진은 어쨌든 작가가 어떻게 보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매체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요. 물론 어떤 때는 좀 폭력적이기도 하지만요. 사실은 저는 사진작가를 보면 카메라의 시선을 많이 놓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해요. 가끔 찍은 사람을 잊어버리는 작가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딱 프레임 하나 짜듯이 작품에 보이는 대상을 결정하고요. 자기가 세상 보는 듯하게 보는 것 같아요. 인물 사진을 찍으면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있는 거거든요. 저는 그게 재밌다고 판단해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날 보는 것도, 어떤 생각으로 보는지도 사진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쌍방의 교차가 이루어지는 그 순간이 기록되는 거죠. 그래서 사진은 이 시선의 방향을 잘 담는다고 생각해요.
2)〈적산(敵産)_인천(仁川) 89〉, ⟪실용과 기복⟫, 시청각Lab, 2024. 전시 리플렛 표기: 1F-05, 1층 우측 방 벽면에 전시.
Q: 도미이 선생님의 기록 사진을 따라간 활동도 이것도 그런 시점에서 보면, 도미이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간 거네요.
A: 맞아요. 그래서 이 사진을 왜 찍었는지 보면요. 앞에 이 우물터가 있기 때문에 찍은 거예요. 우물을 쓰는 생활과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서요. 왜 찍었는지 다 보이죠. 이 사진도 구조를 먼저 보여주고, 증축된 모습을 보여주고요. 이 사진은 이제 도로변이니까요. 이 도로변의 깊이와 모서리에 변한 것들을 보여주죠. 학교 옆에 이제 상점 거리를 찍은 사진은 이렇게 도시가 구성됐다고 보여주고요. 그러니까 이제 지붕이 변한 모습들이나⋯ 도미이 선생님이 왜, 이렇게 찍었는지 다 이제 이해하죠. 왜냐하면 도시 연구를 기반으로 촬영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 맥락에 맞게끔 시각 자료를 분석하는 일이 곧 그의 시점을 이해하는 거죠.
Q: 그 이해의 과정이 굉장히 수행적이네요.
A: 그렇죠. 왜냐하면 나도 현장을 직접 보면서 이제 둘, 더블이 되는 거잖아요. 시차도 있고요. 감동적이죠. 사진을 자세히 보면 찍는 사람이 보이니까요. 그래서 고민하면서 어디까지 넣어야 하나, 어떤 각도로 다 넣어야 하나, 어디서 찍어야지 이게 느낌이 잘 담길까, 이 공간이 잘 담길까, 그런 걸 많이 고민하며 화각을 잡는 거죠. 어떤 각도로 찍어야 한다. 그러면 여기서 뭐 뭐가 보이는지 보고 판단한 것이 사진에 담기죠. 사진은 영상이 아니라서 360도로 돌릴 수 없잖아요. 물론 공간을 두 번 찍고, 세 번 찍거나, 이쪽도 찍고, 저쪽도 찍는 경우도 있지만요. 하나에 가장 특징적인 것을 잘 담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아요.
Q: 사진 찍을 때 처음에 섭외하신 다음에 여러 번 방문하시기도 하나요?
A: 조건이 안 되면 한 번 더 부탁드리고 약속을 잡죠. 현장에 가면 나중에 열어주실 때도 있고, 편하게, 흔쾌히 또 열어주실 때도 있고요. 거부감이 있어 거절하시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사진이 많아지니까 좋더라고요. 재밌어지더라고요. 점점 (양이) 풍부해지고 앞으로 뭐 찍어야 하는지도 목록화 된다고 해야 하나. 다른 면을 좀 더 보여주려고 생각하게 되어요. 집이 삶의 형태이자 모양이니, 겹치지 않는 내용도 고려하게 되고요. 그러니까 만약에 도코노마(床の間)를3) 변형한 모습도 재밌잖아요. 근데 인천에 이런 유형이 되게 많아요. 거기서도 다른 디테일을 외부에서 찍는 것도 고민하죠. 예전에는 (많이 변형된) 괴물 같은 것만 찍었는데, 이젠 ‘저것도 찍어야겠네.’ 하죠. 이제 혼자 남아 있는 나가야, 요즘에는 또 손바닥만큼 (일식 가옥의 흔적이) 보이는 데도 있거든요. 진짜 손바닥만큼 보이는 데가 있어요. 다 변형해가지고요. 그러니까 되게 퍼즐 찾기 같죠. 화장실 앞을 찍은 작품처럼 외부에 손바닥만큼 남아 있는 적산 가옥의 잔재도 있고요.
3) 도코노마(床の間)는 전통적인 일식 가옥에서 서화, 화병 등을 비치하는 장식 공간이다. 손님 맞이 방의 벽 한쪽이 들어간 모습으로 다른 공간보다 바닥이 약간 높다.
Q: 그걸 알아볼 수 있으신 거네요.
A: 저번에 건축 공부하는 친구들이 왔어요. 이제 사진을 보여줬죠.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랬더니 확실하다고, 맞는 것 같다. 조그만 것도 너무 재밌다고 했죠. 저번에 찍었는데 잘 나오지는 않았어요. 그렇기에 이 작업처럼4) 포토제닉하게 나오는 순간들이 있는데요. 만나기 힘든 순간이죠. 내가 조절할 수 없으니까요. (거주민에게) “불을 켜주세요.” 그럴 수는 없잖아요.
4) 〈적산(敵産)_진해(鎭海) 01〉, ⟪실용과 기복⟫, 시청각Lab, 2024. 전시 리플렛 표기: 1F-08, 1층 좌측 벽면에 전시.
Q: 그렇네요. 마지막 질문까지 진심 어린 답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이번 기회를 통해 소사공단에서 팀으로 일하며 경험하신 가능성이나 건축역사학회 발표에서 소개해 주신 탐험과 수행 후의 소회를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A: 저도 평소에 고민하던 부분을 질문해주셔서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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