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팀의 정체성.. 다원이 뭐야? 대체? >
전유진 작가님 : 제가 어떤 면에서는 배운 거죠. 우리 팀은 ‘다원 예술’을 만드는 팀으로 자주 소개되는데, 그… 다원 예술이란 정의가 좀… 뭐랄까? 어디에도 정의되지 못하는 것들이 다원으로 말해지더라고요. 저희도 첫 프로젝트를 지원 사업에 넣어보려 할 때 분야를 고민했는데, 사운드아트는 지원 사업 내에 카테고리화되어 있지 않았어요. 음악, 뮤지컬도 아니고 시각 분야도 아닌데 어떻게 하지? 그러다가 다원 예술을 보고 “이거네!” 하고 지원하게 된 거죠.
전유진 작가님: 지원 사업의 카테고리에 의해서 저희 팀의 정체성이.. 다원으로 붙여진 것 같기도 해요. ‘다원’이라는 말을 우리가 자발적으로 붙인 게 아니라서 그런지, 항상 그 말에 좀 찝찝한 부분이 있어요.
JS정선: 다원이란 장르는 나 뿐만 아니라 막연히 JSJS팀과도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팀작업을 하면 할수록 “이게 시각인가?” 하는 의구심이 점점 커지고.. 그런데 지원 사업을 따야만 하는 상황상 역시나 우리도 카테고라이징을 할 수밖에 없는데…다원이라는게 항상 문제적 단어로 다가왔지만 우리 JSJS같은 경우는 서울익스프레스를 보며 그… 의심의 방황이 조금 정리 되긴 했다. 앞서 길을 잘 만들어 주시고 계신 작가님들을 보며 장르의 조합과 실험. 그리고 다원의 조건이란 뭔가에 대한 실마리를 얻고 있는 것 같다.
홍민기 작가님: 몇 년 전인가? 지원사업을 하려고 다원 예술로 들어갔거든요. 근데 지원서를 열었는데, 조건이 있더라고요. “다원 예술이 뭔지”를 내가 정의해야 해요. 그러니까 기획을 보여주기 전에 “다원 예술의 정의에 대해서” 먼저 써야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JS준성: 쉽지 않은 일 인 것 같았다. 장르의 정의가 분명하게 있는 상황이 아닌데.. 어쨌든 그것에 대한 정의부터 스스로 내려야한다는 지점이… 장르라는 것이 또 굉장히 모호하고 각자가 정의 내리는 것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특히 조각이나 회화 같은 경우에는 “이거는 조각이고 이거는 조각이 아니야” 라는 것이 그 필드에서 이미 활동중인 사람들에 의해 어느정도 결정이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는데.. 다원예술도 언젠가는 이걸 하는 사람들에 의해 경계가 나눠질 날이 올까..? 사실 경계들을 허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일종의 다원예술의 의의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아이러니 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시스템에 대한 진솔하고도 적나라한 이야기들은 우리끼리의 비밀얘기로 생략…)
홍민기 작가님: 아까도 솔직하게 얘기했듯이 어디에도 정의가 되지 않은 것들을 ‘다원’이라는 영역에 다 넣으니까, 사업을 진행하는 지원 기관측에서도 이게 뭔지 종잡을 수가 없게 된 거죠.
전유진 작가님: 저희도 결국 다원 지원으로 작업을 수차례 발표하게 되었죠. 어떤 면에서 우리 작업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그것뿐이니… 서울익스프레스는 다원 예술을 하는 팀으로 정체성이 생겨버린 거죠.
지원 기관들도 다원 예술의 정의가 모호하니, 그 존재의 당위성을 고민하는 것 같아요. 다원 예술 작가로서 불려 간 몇몇 자리에서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그렇게 이름 붙여줄 수 없는 게 다 들어가는 카테고리 하나쯤은 있으면 안 되냐고요.
(…)
전유진 작가님: 다원 예술의 정의가 다 다르고, 다 열려 있으니까 그게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지만, 그런 게 하나쯤은 있어야지 실험적인 게 나오는 거 아닐까요? 실험적이라는 건 결국 어떤 걸로 정리가 되기 어려운 것들이 실험이지, 이미 딱 보자마자 “어머 이건 이거네.” 하고 정의가 되어 버리면 그건 실험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실험적인 작업을 포용해 줄 항목이 있어야지, 뭔가 새로운 시도도 나오는 거다.” 이런 얘기를 했지만, 다원 예술이라는 서로 다 다른 정의를 각자의 입맛에 맞게 사용하니까 말이 많은 것 같아요.
홍민기 작가님: 요즘은 기술 베이스 작업들이 다 다원 예술일 거예요, 아마.
전유진 작가님: 그러니까 예술에서 성과라는 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잖아요.
홍민기 작가님: 이걸 약간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유진 작가님: 아마 다원 예술은 계속 문제가 될 거예요. 이게 왜 필요한지 설득력을 얻으려면 실험성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실험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다원은 계속 어떤 장르로서 계속 구획화되기를 누군가는 요구할 거거든. 이 얘기가 설득력이 없으면 계속 공격을 받을 거야. 아마.
JS (정선): 개인적으로 다원이라는 것이 한눈에 ‘이건 뭐다’ 라고 판단이 되면 안된다는 말에 너무 동의해요. 얼마전 다원 예술 지원 사업으로 진행된 전시를 보러 갔는데... 이게 다원인가 싶더라구요. 단지 키네틱이 있다고 다원인가? 기술이 뭔가를 움직이고 있다고 해서 다원인가? 이런 전시까지 다원으로 묶이면 정말 다원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을 거 같은 그런 생각… 별개로 항상 다원이라는 타이틀을 갖다 붙이는 것에도 알 수 없는 찝찝함이 있다는 것 또한 너무 공감 가요.
JS (준성): 모든 걸 포함하는 건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울타리를 쳐서 양들을 기르는데, 양이 죽을 때까지 달려도 울타리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치면, 그건 울타리가 아니다 그냥 양의 세상이다..
JS정선: 추가로.. 나의 러프한 생각이지만은.. 한국에서 유독 “다원예술” 이라는 것이 특별한 어떤 기대를 자꾸만 받고 있기에 문제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든다. 특히 예술x기술이 트렌드처럼 소모되면서 더욱.. 미국의 경우 다원을 Interdisciplinary Arts 라고 칭하는데 다학제적인 의미로… 아주 오래전부터 쓰여 왔고,(예를 들면 뭐… 환경, 과학, 음악, 공학 등 타분야의 전문성이 경계를 허물고 들어오게 되는 예술) 그냥 자연스럽게 미디어아트처럼 흔하게 쓰이는 용어인데 어떤 실험성의 유니크함을 내새우며 “이 작업은 실험적이고 새로워!” 라고 내세우진 않는다는 것.. ? 왜냐면 그런 시도와 작업들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어쨌든, 무용이나 서커스류가 들어가면 퍼포먼스로 주로 묶이는 것같고.. 지금 뭔가 동시대 실험성을 강조하고 장려하는 의미로 다원예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또 경계가 다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이제 무엇을 실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새로운 실험이라는 게 진짜 있는 걸까? (나의 뇌피셜일수도 있음은 감안하시라.)
홍민기 작가님: 주로 공연 (타임라인 베이스) 작업을 약간 다원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공연과 시각이 합쳐진 형태를 다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작년 전시 때, 다원 예술 분야를 평가하는 분이랑 한참 얘기 나눈 적이 있어요. 그분의 얘기는 좀 다른 면도 있더라고요. 주로 ‘공연’의 형태가 다원 예술로 지원하는 추세니까, ‘출판’이라든가 ‘연구’, ‘아카이빙’ 이런 쪽으로도 확장해서 보더라고요. 그러니까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연계되는 형태로요. 작업을 계속 발전시켜서 연이어 지원하기를 바라는 것 같더라고요. 하여튼... 모르겠어요. 다원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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